바이든 날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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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호, 박준범, 김병일 판사 대한민국 국민은 1월 12일, 서울서부지법 민사 12부(재판장 성지호 판사, 박준범·김병일 판사)의 '역사적인 판결'로 인해 '지록위마'에 필적할 만한 신조어를 얻게 됐습니다. 바로 '바이든 날리면'입니다.

 

지록위마

2천여 년 전 진나라 시대, 간신 조고가 어린 황제 호해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부른 뒤 주위에 있는 신하들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조고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말한 신하들을 모두 숙청한 뒤 황제보다 더욱 강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여기서 권력의 강요나 아부를 위해 사슴을 사슴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말이라고 부른다는 뜻의 지록위마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습니다. 그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권력자에 아부하기 위해 사실이나 상황을 왜곡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지록위마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어 때론 조롱, 때론 비난의 도구로 활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2024년 1월 12일 이후, 이런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때 2천 년 전 중국에서 나온 고사성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게 됐습니다. 성지호, 박준범, 김병일 판사가 '바이든 날리면'이 지록위마와 똑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라고, 공식 확인서를 발부해 줬기 때문입니다.  세 분 판사의 이런 위대한 업적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모양입니다. 권력의 힘을 등에 지고 아부하는 재판부 국민들보다 수준 미달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얼간이들이 권력에 아부하는 꼴이 우습습니다. 저런 인간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권력은 모래성입니다. 

 

지난번 대장동 사업 50억 클럽의 한 사람인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뇌물 무죄 판결을 내린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이준철 판사보다 훨씬 뛰어난 업적입니다. 이준철 판사의 판결은 한 사람에게 일시적인 효과를 낼 뿐이지만, 성지호, 박준범, 김병일 판사의 판결은 앞으로 무수한 사람이 영원히 애용하게 될 관용어를 개발한 셈이니까요.

 

지록위마의 고사를 탄생시킨 조고도 한때 세상을 호령하는 듯했으나 황제를 탐하다가 결국은 불행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한 정직한 사람을 벌한 죄를, 훗날 가중해 받은 것입니다.

 

 

최악의 반언론적 판결

지록위마 고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란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늘 그물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어느 게 거짓이고 참인지, 알맹이이고 쭉정이인지 반드시 가려낸다는 게 역사의 준엄한 법칙임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대통령 권력이 아주 대단한 것 같지만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언제까지 참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언론은 어떤 사안에 관해 정부가 원하는 해석만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가뜩이나 윤석열 정권 들어 정부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언론이 주눅 들어 있는데, 이번 판결은 그런 경향을 더욱 가속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서머리 판결

바이든-날리면' 소동 이후 2022년 11월,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을 중지하고 문화방송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것에, 이번 판결이 정당성을 부여한 꼴입니다. 사법부가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전략적 봉쇄 소송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최악의 판결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언론을 괴롭히기 위해 하는 전략적 봉쇄 소송은 소송 제기 단계에서 바로 각하하는 이른바 '서머리 판결'(summary judgment)로 끝내는 게 보통인데도 말입니다.

 

이번 판결은 한국의 행정부와 사법부, 더 나아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불신하게 하는 기념비적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소송 당사자인 문화방송도 바로 항소했고, 많은 언론인과 단체, 지식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거세게 내고 있습니다. " 상식이하이고 악랄한 판결입니다.

 

마치며

이세 끼라는 말과 바이든이라는 말도 내 귀에는 똑바로 들리던데 내 귀가 잘못됐나? 기고만장하는 이 권력이 언제까지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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